뭐꼬

정태춘 박은옥 - 20년 골든앨범(1978-1998) 2

히라소리 2019. 9. 26. 19:21


 



 

 

 

 

오랫동안 기다려온 "정태춘 박은옥 20년 골든 앨범"이 2002년 3월 발매되었다. 1978년, 정태춘의 첫 앨범 '시인의 마을'부터 1998년,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정동진/건너간다'까지 총 11개의 음반에 수록된 100 여 곡 중, 33곡을 엄선하여 하나의 앨범(2CD)에 담았다.


지난 겨울, 음반 발매사를 옮기면서 신보와 몇 년 후 30주년 기념 전집 발매 계획을 검토하던 중, 지난 20여 년간을 정리하고 향후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기존 3개 사에서 발매된 11장의 앨범 중, 정태춘 박은옥이 직접 제작 배포하던 6종의 앨범을 모두 절판시키고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은 곡 33곡'만을 선정, 발매하게 된 것이다.


이번 음반이 다른 가수들의 베스트 음반과 그 의미가 다른 것은, 가수 중심의 히트곡 앨범이 아닌 작가 중심의 "작품 연대기 앨범"이라는 점이다. "정태춘 박은옥 20년 골든 앨범"은 정태춘, 박은옥이라는 두 가수가 그들의 음악적 성과를 집대성한 20년 앨범 결산 작업이기도 하지만, 작품자 정태춘의 작품세계의 추이와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변화상을 한 눈에 되돌아 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국내 가요계 초유의 일이며, 이 점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일인 것이다.

 

앨범 작업을 마치고, 정태춘은 그 기념 공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번 작업은 제게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착잡하지만, 그간 11종의 앨범에 묻어 있었던 그 앨범마다의 끈적끈적한 제 개인적 소회를 모두 털어내고, 그 20년을 하나의 앨범 개념으로 요약하고 새로 출발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그간의 제 노래들을 스스로 평가해야 했구요. 제 평가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로, 그간의 노래들이 모두 나의 주관적인 독백이었구나. 사춘기 일기 같은 노래로부터 투쟁적인 노래들까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들이 그들의 노래로 받아들였을까 ?


두 번째로, 나의 노래는 "주변자의 노래"였구나. 우리 사회의 중심 혹은, 주류, 대세에 대해 끊임 없이 불만스러워하고, 투덜대고 그리고, 비판하고, 공격하고, 풍자하고. . . 메인 스트림이 결코 정당하지 못했던 우리 현대사와, 그것의 주변자들로 전락되고 소외됐던 수많은 대중들. 이것이 내 노래 존재의 배경이었구나.


세 번째로는, "가장 우리적인 노래"에 관한 것인데, 여기 남한 사회에 있어야 할 가장 보편적이거나 전형적인 노래는, 그 가사와 음률에 있어서 이 땅의 모국어적인 미학을 가장 잘 드러내야 하고, 메시지에서는 여기 사람들의 삶의 내용을 가장 솔직하게 투영해야 하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그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은 것이어야 할진대, 나의 노래들은 너무 부족했구나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큰 회한 없이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중년의 가수로서 예술적 성취에 관한 큰 욕심이나 한 사람의 사회 활동가로서 사회 변혁에 대한 급진적인 조급증들도 털어내고 이제까지 보다 더 담담하게, 차분하게 새로운 노래들을 해 나가야지요. 주변자들이 노래를 계속 불러야지요."

 

 

 

정태춘 박은옥 - 20년 골든앨범(1978-1998)

 


01. 실향가
02. 양단 몇 마름
03. 고향집 가세
04. 사랑하는 이에게 2
05. 인사동
06. 한 여름 밤
07. 나 살던 고향
08. 저 들에 불을 놓아
09. L.A. 스케치
10.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11. 92년 장마, 종로에서
12. 정동진 1

13. 건너간다
14. 5.18
15. 수진리의 강

 

 

 

이야기는 거짓이어도 노래는 참말이다. 유구한 역사를 가로질러온 이 속담이야말로 세 개의 성상을 넘어온 정태춘과 박은옥의 음악 세계에 가장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른다. 정태춘, 그는 독창적인 싱어송라이터이면서 불굴의 투지를 가진 전사였다. 그의 의미가 참으로 소중한 것은 그가 명분만을 위한 싸움꾼으로 그치지 않고 그 싸움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학을 포착해 낸 데 있다.

 

1978년 '시인의 마을'과 '촛불'을 담은 데뷔 앨범으로 MBC 방송의 신인가수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던 그가 십년 뒤 '혁명의 가객'으로 주먹을 하늘 높이 치들면서도 그는 단지 구호가 아닌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불법의' 음악을 분만했다. 아직도 그 흥분의 여음이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아, 대한민국...'에서 박은옥과 함께 만든 '92 장마, 종로에서' 앨범은 무릎 꿇는 것을 거부하는 예술가의 기념비적인 초상 그 자체였다.


짧았지만 찬란했던 70년대 통기타 영웅들의 리스트는 짙어가는 긴급조치 시대의 어둠 속에서 김민기를 하관시키지만 정태춘이라는, 논바닥 냄새가 폴폴 나는 이름으로 새로운 연대기를 서술하기 시작한다. 그는 김민기와 이정선의 중간 지점 쯤에서, 그리고 이장희와 김정호의 반대편에서 이들이 획득한 대중적인 명성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시인의 마을'부터 80년대 후반의 '무진 새 노래'에 이르기까지 이 진진한 디스코래피는 가물거리던 싱어송라이터의 등잔에 다시 불붙였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관념적인 정관의 시정을, 하지만 대지에 뿌리박은 짙은 호소력을 우리 대중음악사에 추가한다. '시인의 마을'과 '여드레 팔십리'는 그 이후로 줄줄이 이어지는 담시적인 발라드의 시발점이 되었고, '서해에서'는 '떠나가는 배'의 프롤로그이며 대중성을 견인했던 '촛불'의 낭만적인 선율은 '사랑하는 이에게' 시리즈로 다시 현현하게 된다.

 

투쟁의 시대는 너무나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정태춘은 이른바 운동권 노래집단마저 합법 음반 시장으로 진출하는 전환기에 즈음해서도 최후의 독립군으로서의 지사적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저 들에 불을 놓아'같은 정결한 상실을 노래하고 일본과 미국으로 시야를 넓힌 정태춘은 'L.A. 스케치'와 '나 살던 고향' 같은 뼈 있는 서경시와 '사람들' 같은 유장한 사설을 통해 그가 동시대의 한가운데에서 고독하게 서 있음을 자각한다. 고립된 성찰과 세련된 풍자가 높은 경지에서 조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부부는 숱한 상처 속에서 단련된 아름다움을 추출해 낸다. 이들은 시류에 따라 노선을 수정했는가? 아니다. 이들에게 애초부터 노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다만 성실하게 새로운,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 갔을 뿐이다. 다음에 오는 자들이 그 길을 택하지 않더라도, 그리하여 결국엔 다시 잡목으로 우거져 길이 없어져 버릴지라도 이들이 헤쳐 나간 길의 의미가 무시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정태춘과 박은옥의 다음 발걸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