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짐 모리슨(Jim Morrison)과 더 불어 ‘3J’로 일컬어지는
재니스 조플린은 60년대 최고의 백인 여성 락싱어였다.
특히 흑인영가에서나 만끽할 수 있던 처절 한 감성을 특유의 절창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청중들을 매료시킨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70년대 초입에 발생한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 자체로 60년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43년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재니스는, 어려서부터 그다지 예쁘지 않은 외모와 쉽사리 융화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또래들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럴수록 특유의 까칠한 목소리로 옛 블루스/포크 넘버들을 부르며 심신을 달랬던 그녀는,
어렵사리 진 학한 대학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지내다가 결국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고 만다.
이후 클럽가를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 다가 1966년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이하 BBHC)의 싱어로
팝계의 전면에 나 서게 된 그녀는, 1967년 발표된 앨범 [Cheap Thrills]를 통해 본격적인 명망을 얻게 된다.
당시 조플린의 광기어린 보컬과 몬터레이(Monterey) 페스티벌에서의 열정적인 스테이지는 큰 화제를 모았으며,
결과적으로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사이키델 릭(psychedelic) 사조의 대표적 스타로 부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BBHC는 그녀의 백밴드나 다름없는 존재로 인식될 따 름이었다.
이듬해 BBHC를 탈퇴한 조플린은(그 결과 BBHC는 1차 해산을 맞이하게 된다) 효과적인 솔로활동을 위해
코즈믹 블루스 밴드(Kozmic Blues Band)를 결성하였으며,
1969년 앨범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를 발표해 기대대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이즈음 끝없이 이어지는 투어와 밴드의 잦은 멤버교체 등으로 자신을 돌볼 여유를 갖지 못 한 그녀는,
거의 매일 술과 마약에 절어 극도로 무절제한 생활에 빠져들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대 최고의 라이브 싱어 로 인정받을 정도의 압도적인 무대를 펼치곤 했다.
1970년 BBHC의 재결성에 참여했던 조플린은,
그 러나 얼마 못 가 밴드를 탈퇴한 뒤 풀 틸트 부기 밴드(Full Tilt Boogie Band)라는 이름의
새로운 백밴드와 함께 공연과 녹 음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1970년 10월의 어느날,
LA의 한 호텔방에서 헤로인 중독으로 숨진 그녀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팬들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당시 녹음이 완료된 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던 조플린의 솔로앨범 [Pearl]은 이듬해 2월 출반되었으며,
이 앨범과 싱글 ‘Me And Bobby McGee’가 각각 차트 1위에 올랐다
(또다른 ‘3J ’였던 지미 헨드릭스와 짐 모리슨 역시 1970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으며, 그 3명의 사망당시 나이는 모두 27세였다).
사후에도 조플린의 인기는 쉬 사그라들지 않았다. [In Concert](1972), [Greatest Hits](1973) 등의 앨범이 속속 발매되어
높은 인기를 누리는가 하면, 1979년에는 그녀의 거친 인생이야기에 기초한 영화
‘The Rose’가 베트 미들러(Bette Midler) 주연으로 제작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재니스 조플린은 1995년 락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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