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송

Evergreen Tree - Cliff Richard

히라소리 2019. 12. 5. 22:34

 

 






Oh, darling, will our love be like an evergreen tree?
그대여, 우리 사랑은 늘 푸른 나무처럼 영원할까요?

Stay evergreen and young as the seasons go
계절이 지나도 언제나 젊고 푸르게 남아줘요

Your kisses could make love grow like an evergreen tree
당신의 키스는 늘 푸른 나무처럼 사랑을 키울 수도 있어요

Blue moon, the summer sun and the winter snow
파란 달, 한 여름 햇볕, 겨울날의 흰 눈처럼 말이에요

On every branch will blossom dreams for me and you
가지마다 당신과 저를 위한 꿈들이 피어날 거에요

Our tree of love will stay evergreen
우리 사랑의 나무는 언제나 푸를 거에요

Our hearts stay ever true
우리의 마음도 영원히 진실할 거에요

Darling, I love you so
그대여, 당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Don't you know that I'll be true
'til the leaves turn blue on the evergreen tree?
늘 푸른 나무의 잎들이 시드는 그날까지
제가 당신께 진실하리란 것을 모르겠나요?

On every branch will blossom dreams for me and you
가지마다 당신과 저를 위한 꿈들이 피어날 거에요

Our tree of love will stay evergreen
우리 사랑의 나무는 언제나 푸를 거에요

Our hearts stay ever true
우리의 마음도 영원히 진실할 거에요

Darling, I love you so
그대여, 당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Don't you know that I'll be true
'til the leaves turn blue on the evergreen tree?
늘 푸른 나무의 잎들이 시드는 그날까지
제가 당신께 진실하리란 것을 모르겠나요?

 






 


1940년 10월 14일 인도의 럭크나우에서 해리 로저 웹(Harry Roger Webb)의 본명으로 태어난 클리프 리차드는
엘비스 프레슬리로부터 영향을 받아 1957년부터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그는 흑인 감성이 풍부했던 엘비스와
달리 경쾌하고 팝 적인 느낌이 짙은 음악으로 '영국의 로큰롤 황제'로 등극했다.
1963년 비틀스(Beatles)와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가 등장하기 전까지 클리프 리차드는 브리티시 록의
'절대 강자'였으며 그의 음악 세계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지(聖地)였다.
1958년 'Move it'으로 시작한 히트 퍼레이드는 1960년대 후반까지 40곡 이상을 영국 인기 차트에 등록시키며
경이로운 행진을 기록했다. 당시 그의 백 밴드 드리프터스(Drifters)는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 보컬 그룹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섀도우스(Shadows)로 바꾸었다.


그의 인기가 치솟자 영화 관계자들은 (Serious Charge), (Summer Holiday), (The Young ones)처럼 젊은이들을
소재로 한 상업적인 영화에 출연시켜 비상(飛上)하는 클리프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국내에서도 'Living doll',
'Visions','Constantly', 'Summer holiday', 'Congratulations', 그리고 그 유명한 'The young ones'등이
확실하게 인기를 주도했다.하지만 이것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한정된 인기였다.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는 인기를 얻지 않았다.
1960년대 미국 음악계를 침공한 브리티시 인베이션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클리프 리차드는 미국 진출의 꿈을 접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 자신의 백 보컬리스트 출신의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이

 미국에서 대대적인성공하자 이것에 고무된 클리프는 미국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서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인의구미에 맞는 노래들로 북미 시장을 두드렸다.

1976년에 공개된 디스코 풍의 'Devil woman(6위)'이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탑 텐에 올랐고 1980년대 초반까지 'We don't talk anymore(7위)', 'Carrie(34위)',
'Dreaming(10위)', 'Little in love(17위)', 'Daddy's home(23위)', 그리고 자신보다 더 유명해진
올리비아 뉴튼 존과 호흡을 맞춘 영화 (제너두)의 삽입곡 'Suddenly(20위)' 같은 성인 취향의
팝 사운드로 두 번째 전성기를 일구었다. 


1969년 10월 16일부터 18일. 이 3일은 우리나라의 척박했던 공연 문화와

사회 전반에 걸쳐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의 시간적 배경이다. '오빠부대'의 원조이며 팝 스타로서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자발적인 팬클럽이 탄생했던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의 3회에 걸친 내한 공연, 그것은 집단적인 행동과 조용한 환호성의 이율배반적인
분위기로 특징지어지는 한국 공연 문화의 시발점이 되는 계기였다. 이제는 아주머니들이 된 예전의 소녀
팬들을 위해 현재까지 공연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클리프 리차드는 1995년 영국 왕실로부터 대중
음악계에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다.   












 


 










'밥 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0) 2019.12.05
Devil Woman - Cliff Richard  (0) 2019.12.05
I Just Fall In Love Again / Anne Murray  (0) 2019.12.05
Don't Cry For Me, Argentina  (0) 2019.12.05
Don't cry for me Argentina  (0) 2019.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