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마을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살고 있었어요 둘이 말이죠. 첫눈에
첫눈에 반했다네. 예 갑돌인 갑순일 사랑했네 갑순인 갑돌일
사랑했네.
높은 산과 들에 꽃들이 만발할때 두 손 꼭 잡고
사랑을 속삭였네. 예 갑돌인 갑순일 사랑했네. 갑순인 갑돌일
사랑했네.
세월은 흘러 흘러 처녀 총각 되었다네. 그리움 알고부터
눈물 흘렸다네. 예 갑돌인 갑순일 사랑했네 갑순인 갑돌일
사랑했네. 갑돌아.
연지 연지 곤지 분바르는 갑순이 꽃가마 타고갈때
갑돌인 잊어라. 예 갑돌인 갑순일 사랑했네 갑순인 갑돌일
사랑했네.
사랑 사랑이야 에헤야 내 사랑아 시집 장가가서
잘 살아보자고요. 예. 갑돌인 갑순일 사랑했네 갑순인 갑돌일
사랑했네. 갑순아.
"김수철 그는 천재 음악가"가 맞다!
1979, 80년대 검은 모자를 눌려쓴 키작은 작은 청년이 일렉기타를
매고 '일곱색깔 무지재'를 열창할 때만해도 밴드 <작은거인> 김수철은 마이크 앞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로지 마이크 앞에서 노래만 부를 뿐이였다.
그러던 김수철이 1983년 솔로 앨범 1집을 발표하며 탄생시킨 "못다핀 꽃 한송이", "내일", "별리"
등등은 대학가는 물론이고 시내의 온 카페, 커피숍에 스피커를 장악했다.
그만큼 김수철 솔로 1집은 반향이 컸다. 그런 김수철의 음악은 80년대 중반까지 "젊음 그대",
"나도야 간다" 등으로 현시대까지 시대를 거쳤던 많은이들에 애창곡이 되었고,
그 애창곡에 18번은 변할 줄을 모르는 명곡처럼 간직되고 있다.
김수철의 음악에 변화가 온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였는데, 영화음악에 시도와 아버지의 별세에 따른 시련에과정을 겪으며
그의 음악에는 국악, 재즈, 하드록, 소올, 트로트 등등 변화되고 접목시키는
뛰어난 창작능력과 편곡능력을 겸비하면서 대중 음악계 뿐 아니라 전문 음악계 종사자들에게도
인정과 갈채를 받아냈던 김수철 음악 인생에 있어 중요한 도전과 과제의 시기였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오프닝 곡을 만들고, 1987년 김수철 국악 1집이 발표되었는데
이 음반의 센세이션은 대중 음악 마니아에게서도 국악계에서도 "김수철"이라는 인물에 대해칭송에 평가를 내리고기도 했지만,
그에 반해 '대중가수 주제에'란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새로운 장르에대한 개척의 외로움을 달랬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앨범은 87년 대한민국 무용제 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대중가수라는 이유로 수상이취소되는 해프닝에 아픈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음반이기도 하다.
김수철 - 황천길
2년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그간에 국악곡으로 작곡한 곡들을 모아 앨범 <황천길>을발표했는데
태평소, 아쟁, 대금 등에 소리와 국악 타악기와 양악 타악기의 조합을 이뤄낸음악적 시도라든가
아시안 게임 오프닝 곡에 이은 피날레로 사용되었던 "풍물" 또한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그후에도 TV 드라마 주제곡이라든가, 서편제를 비롯한 영화음악 "태백산맥", "축제" 등을 비롯해
불교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팔만대장경" 등 김수철에 창작열과 음악 창작에 도전정신은가히 감탄을 하지 않고는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수철 - 비애 (피리)
특히나, 1989년에 나온 앨범 <삶과 죽음>이라든가, 대한미국 무용제에서 대상과
작곡상을 수상한 <불림소리>는 개인적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앨범이였는데,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장식하고
있는 9분여 길이의 국악타악기만의 타음은 정말이지 두 엄지손가락을 다 치켜 올려세워도 모자란다는
평을 하고 싶을 정도로 감동과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시간이였다.
김수철 - 삶과 죽음 (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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