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꼬

불나무 - 방의경

히라소리 2019. 10. 12. 16:22


 


불나무 / 방의경


 


산 꼭대기 세워진 이 불나무를


밤 바람이 찾아와 앗아 가려고


   타지도 못한 덩어리를


덮어 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 송이여
무엇이 내게 주검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덩그라니 꺼져버린


불 마음위에 


                                                     밤 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네어도                                                    
대답 대신 울음만이 터져 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 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주검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산 아래 마을에도 어둠은


찾아가고
나 돌아갈 산길에도 어둠은 덮이여


들리는 소리 따라서 나 돌아가려나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 송이여
무엇이 내게 주검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방의경 '불나무' (1972)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포크 음악을 상징해온 여가수는 양희은이었다. 그는 트윈 폴리오(Twin Polio) 이후 형성된 한국 포크 음악의 계보에서 '최초'로 일반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알린 '여자' 가수였고, 그런 상징성을 뛰어넘어 그가 부른 '아침이슬'은 역사에 남았다. 이 사실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최초'가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라 소개되는 방의경이다. 하지만 양희은과 달리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의 숫자는 적다. 그가 양희은이 불러 유명해진 '아름다운 것들'의 노랫말을 써줬다는 사실도, 그가 1970년대 초반 김민기만큼이나 중요한 포크 음악인이었다는 사실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차 옅어져 갔다. 그저 그의 유일한 독집 앨범이 수집가들의 목표가 되어 수백만 원의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만이 호사들의 입길에 오르내릴 뿐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 '불나무'는, 그리고 그 노래가 담긴 독집 앨범 [내 노래 모음]은 그 사실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방의경은 분명 더 많이 알려졌어야 할 싱어-송라이터였고, 지금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았어야 할 음악인이었다.

 

방의경은 대학 시절부터 빼어난 노래 실력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맑은 목소리에 반한 이봉조와 길옥윤 같은 대(大)작곡가들이 자신의 노래를 취입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떠돈다. 하지만 방의경은 자신이 직접 쓰고 만든 노래를 부르길 원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노래를 가지고 당시 포크 음악인들의 산실과 같은 역할을 했던 청개구리 모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충무로에 있던 음악감상실 내쉬빌의 스타가 됐다.

1972년, 그의 노래가 담긴 첫 음반이 출시됐다. 당시 내쉬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젊은 포크 음악인들의 노래를 모은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를]이란 음반이었다. 음반에는 김태곤과 김광희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이 참여했지만, 방의경의 노래는 이 음반에서도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신비로운 느낌의 제목에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노랫말, 그의 노래 '불나무'는 그렇게 공식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의 노래들로만 이루어진 첫 독집 앨범 [내 노래 모음]이 발표된다. 양희은의 첫 앨범 제목인 [고운 노래 모음]과 대비되는 [내 노래 모음]이란 제목은 혼자서 모든 곡을 만들고 부른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긍심이었을 것이다. 이 사실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당시까지도 대다수의 포크 가수들이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없이 외국의 노래를 가져다 번안해서 부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방의경은 그런 시절에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노래를 부른 몇 안 되는 음악인이었다. '여성'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거의 독보적이었다. 양희은이 훌륭한 '가수'였다면, 방의경은 훌륭한 가수이며 '창작자'였다.


그의 음악은 '최초'라는 의미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불나무'를 비롯한 앨범 안의 노래들은 일관된 색을 가지고 당시의 시대를 노래하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영롱함과 신비로움을 모두 품고 있는 목소리는 '최초'라는 의미를 빼더라도 홀로 우뚝 설 만하다. 또한 자신을 '자연종교인'으로 칭할 만큼 자연과 우주에 관해 노래하고, 시대의 아픔에 대해 노래했던 은유적인 노랫말은 당시 청년들에게 많은 위안이 돼줬다.

하지만 방의경이라는 이 흔치 않은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활동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앨범은 발매 즉시 방송금지와 판매금지 처분을 받으며 모두 폐기되었다. 현재 수백만 원을 웃돈다는 음반 가격은 그런 아픈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래들은 당연히 모두 금지곡으로 묶였다. '불나무'의 금지 이유는 사전에 없는 낱말이어서였다. 보통 한국의 문화는 전통이 없이 단절돼왔다 평가 받지만, 이 심의 문화(?)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슬프지만, (음악)세상을 바꿔온 건 '노래'가 아니라 '심의'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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