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실 1975년 고운노래 모음 1989년 고운노래 모음 1집 그토록 슬프고 그토록 생생한 나의 노래여! 우리 노래의 첫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인희와 이연실. 그들은 여느 가수들과는 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바로 고백하자면, 그들은 여옥의 후예들이다. 백수광부의 처가 불렀던 노래가 되기 전의 노래에 곡을 붙이고 말을 만든 여옥처럼 그들은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육성에 음악이라는 옷을 입혔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했고 내 성장 주기는 그 노래를 들은 횟수와 정확히 비례한다. (중략) 이연실의 노래들도 그러긴 마찬가지였다. 듀엣 한마음 출신의 양하영이 어느 고아원에서 그들과 함께 눈물을 철철 흘리며 부르던 <찔레꽃>이나 봄의 눈부심, 그 찬란한 생명의 태동을 이만큼 더 꿋꿋하게 표현한 곡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민들레>나 6,70년대적인 정서가 그대로 배여 있으면서도 지금 들어도 결코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목로주점>이나 첫사랑의 아픔이 초경의 비릿함처럼 묻어나는 <새색시 시집가네>나 소월의 시에 가락을 붙인 <부모>도 정겹기가 그지없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번안해서 취입했던 <스텐 카라친>이나 <릴리 마를렌> 혹은 더 나아가 우리의 구전민요나 광복군의 노래에서 차용한 <타박네>나 <고향꿈> 같은 곡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의 서유석이나 양병집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박인희처럼 이연실 또한 단순한 번안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줄 알았던 포크 싱어였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박인희가 노래에 담겨있는 서정적인 감수성에 치우쳤다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연실은 포크송만이 지닐 수 있는 민중들의 끈질긴 정한을 잡아냈다는 점이다. 그러한 미덕은 방의경의 <불나무>나 <내 집>, <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오>나 김인순의 <나비야>와 <하양나비>, 윤연선의 <그 소년>, <고아>, <님이 오는 소리> 그리고 박영애와 이현경의 <아름다운 사람>이나 <그리워라>, <초겨울> 같은 곡으로 흡수되고 확장된다. 그러니까 서유석의 <친구야>나 <그림자>, 양병집의 <부활가>나 <엄마, 엄마 아-엄마>에 나타난 짙은 사회성과 정치성의 또 다른 지점을 이연실이 열어놓았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객관적일 것이다. 아, 그러나 어찌됐든 윤명환의 곡 <오늘 같은 날>이나 <솔개>, <종이꽃>을 부르는 이연실, 그녀의 음성은 서늘하다못해 고혹적이다. 그녀의 음성엔 향토적인 애잔함과 그리움도 녹아있지만 도회적인 쓸쓸함과 고적함의 향취도 진하게 배여 있다. 그러니까 다들 이연실, 이연실 하는 걸까. 뭐라고 정확하게 꼬집어낼 수 없는 그 미묘한 음성은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출신의 여성가수 토니 차일즈와 애팔래치아 산맥의 작은 마을에 은둔했던 제인 리치의 염세적인 슬픔이 깃든 허스키한 목소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이연실이 청중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꽃반지 끼고>의 은희가 자아내는 청정무구한 애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겠다. 곽성삼이 <귀향>이나 <나그네>, <길손> 등에서 추구한 고향의식과 박동률이 <고향가는 길>과 <굴렁쇠>, <잃어버린 시간>에서 보여준 사라진 고향에 대한 생각이 다르듯이. 웹진 가슴 최창근 2002.06.22 이연실, 그 청아한 음유시인의 기억 유행가, 혹은 대중가요라는 이름은, 그 의미 만으로 보자면 시(詩)와 다르지 않다. 시는 한때 한 시절 사람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유행의 노래이며 뭇사람들이 즐기는 신명의 가락이었다. 지나간 가수 중에서 가장 시인다웠던 사람을 고르라면 나는 박인희를 들겠다. 그녀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그대로 낭송했고 '세월이 가면'은 곡을 붙여 불렀다. 박인환의 이 시들은 박인희의 그 곱고 애절하면서도 절제있는 목소리를 통해야 제 맛이 날 정도다. 박인희의 '모닥불'이나 '끝이 없는 길' '얼굴'은 한 시절을 감전시킨 음표의 시다. 그 노래들은 넋나간 듯 늦가을 밤을 지키며 모닥불 가에서 목이 쉬도록 불러야 원음이 나온다. 박인희 뿐 아니라, 서유석이나 정태춘에게도 시와 대중가요의 쿨한 만남은 계속된다. 그들 또한 모두 각자의 물길로 각자의 노를 저어 각자의 빛깔로 각자의 소신으로 저쪽, 시의 등대가 희부윰한 안개 속을 멀리까지 저어나간다. 하지만 나는 박인희의 시대에 등장해, 알 수 없는 신비감으로 귀를 사로잡았던, 어쩌면 그 야릇한 비현실감 때문에 유령처럼 느껴지는 한 여자를 기억한다. 그가 이연실이다. 이연실의 '찔레꽃'과 '새색시 시집가네' 그리고 '타박네'는 산업화의 멀미 속에서 성장정지의 볼멘소리같은 어린 중얼거림이 기이한 공명으로 울려퍼졌다. 그가 저 향토빛 노래를 부를 때면 그에겐 찔레꽃 민들레 향기가 났고 그의 고무신엔 흙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스텐카라친'이나 '릴리 마를렌'을 부를 땐, 꿈의 담장을 넘어 엿보았던 그 낯선 풍경 속에서 히아신스를 꽂은 소녀가 돋아났다. 그 이국적인 정조는 감미와 퇴폐가 설탕과 프림처럼 섞여 혀끝으로 녹아든다. 내가 한 시절 가장 매료됐던 그녀의 노래는 '조용한 여자'이다. 어젯밤 꿈 속에서 보랏빛 새 한 마리, 밤이 새도록 쫓아헤매다 잠에서 깨어났지요,로 시작하는 그 노래. 이제 막 그리움의 초경을 시작하는 풋소녀의 싱숭생숭을 마치 숨소리 붙들듯 잡아낸 멋진 노래였다. 하지만 '나는 소녀가 아니고 여인 또한 아직은 아니지만, 장발 단속엔 안 걸리니 여자는 분명 여자지요'라고 말하는, 어렴풋한 정체성의 인식은 그녀가 꿈에서 발견한 보랏빛 새처럼, 살짝 열린 문틈으로 비치는 달콤한 세상으로 향해 있다. 나는 조용한 여자를 통해, 여자의 마음을 엿보았고, 그녀를 통해 여자의 눈을 만났다. 조용한 건, 다름이 아니라, 그녀를 노크해줄 어떤 존재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의 고요이다. 순결이란 어쩌면, 아직 사건이 시작되지 않은 영화를 보는 설렘과 기대처럼, 두근거리는 퇴폐의 기분이란 걸, 저 노래는 가르쳐주었다. 이연실의 목소리는 감정을 가공하지 않고, 슬픔을 더 보태지 않은, 교태도 섞지 않은 맑은 물소리같이 흘러들어온다. 잡티가 섞이지 않았기에 어쩐지 불안하고 어쩐지 서글프고 어쩐지 외롭다. 대중가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연실의 '소낙비'를 얘기하리라. 이 희한한 번안곡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장면들에서 느끼는 시적인 설렘, 혹은 요즘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등의 판타지 영화의 매력을 생생하고 아름답게 담고 있다. 검은 고깔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와, 그 아래 크레용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세상. 세상을 덮는 소낙비의 눈으로 바라본 풍경들은, 어쩌면 우리의 상상력이 그리지 못했던 상쾌하고 따뜻한 세상을 스냅스냅으로 보여준다. 빗소리를 타고 날아다니는 노래, 마녀와 세상이 공존하는 노래, 어쩌면 현실의 최루탄과 억압적 공기를 피해, 꿈으로 달아난 사람들이 바라본 한 바탕의 '헛 것'들. 그게 아프고도 감미롭게 붙들린다. 나는 '소낙비' 만한 음유시를, 이연실같은 음유시인을, 이후 들은 적도 만난 적도 없다. 과연 그런지 빗소리에 젖어보시라. 옛날다방 (빈섬) 2004.11.4
이연실 고운노래 모음 1. 조용한 여자 2. 새색시 시집가네 3. 목로주점 4. 그대 5. 민들레 6. 여수 7. 소낙비 8. 찔레꽃 9. 비둘기집 10. 타박네 11. 비개인 오후 12. 하얀 눈길 13. 솔개 14. 그리움 15. 역 16. 노랑 민들레 17. 잠실 야구장 18. 그이 지금 어디에 19. 고향꿈 20. 내 친구야 21. 나의 길 22. 정녕 나의 님 23. 인형 24. 상쾌한 아침은 즐거운 하루 25. 반지 26. 빨간 봉숭아는 27. 한강 28. 비 29. 둘이서 걸어요 30. 별리 31. 참사랑 32. 청산별곡 33. 향기 품은 군사우편 34. 희망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