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리는 거리 한 귀퉁이에
‘버터’ 내음 풍기는 1970년대 걸작 이 즈음 신촌의 한 골목에 위치한 음악감상실에선 매주 수요일 밤, 정기적인 블루스 잼의 공연이 열렸는데 앨범을 발매하게 되면서 지은 이름이 신촌블루스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이정선을 비롯해 풍선, 장끼들을 거친 엄인호와 한영애, 정서용, 김현식 등이 주축이 됐다.
이내믹한 70년대 풍의 블루스 록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한영애에 이어 신촌블루스의 여성 보컬 제1선발감으로 자리매김한 정서용과 블루스와 솔에 더욱 심취하게 된 김현식, 그리고 게스트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초대됐다. 장끼들, 그리고 방미와 엄인호 자신의 솔로앨범에도 실렸지만 대중에게 외면 받던 ‘골목길’은 김현식이란 보컬을 만나자 그 매력이 비로소 드러났다. 엄인호 솔로 앨범의 신스 팝 넘버였던 ‘환상’ 역시 김현식의 보컬과 최상의 연주가 만나면서 전혀 다른 느낌의 곡으로 재탄생했다. 미8군 소속 미국인 연주자들을 브라스 세션으로 기용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생전에 다섯장의 앨범을 남긴 김현식이 불렀던 노래 중에 제일 김현식스러운 노래가 아닐까 한다. 아쉬운 점은 이 앨범 이후 이정선의 음악에서 이런 시도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79년에 발표된 ‘이정선 4’에 수록됐던 슬로 블루스 넘버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도 10년 만에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이정선의 기타와 보컬이 진정한 제 빛을 발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성격으로는 한계가 있었기에 다음 앨범부터 엄인호 1인 체제의 신촌블루스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90년 봄에 세번째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하지만 몇 달 후 김현식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이정선은 두번째 앨범 발매 후 더 이상 신촌블루스의 스튜디오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기가 저물어버린 90년대의 시간과 맞물려 있다. 이정선과 엄인호, 김현식 이 셋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절정의 내공을 선보이며 르네상스 시절 마지막 걸작을 남겼다. 이 좋았던 시절이 불과 5~6년 정도였다는 것은 대중음악 팬들과 대중음악 역사에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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