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미아리 고개
<이해연>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단장의 미아리고개
1.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恨 많은 미아리
고개
[대사]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게 세요/어린 용구는
오늘 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 었어요/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얼마나 고생을 하오/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 오세요/
네 여보
여보
2.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하오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恨 많은 미아리 고개
노래는 남았지만 '미아리고개' 옛모습 사라져 최근 89세 생일맞아 회고록 출판기념회 열어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사람 또는 생사를 모르는 사람 다같이 남편을 그리는 마음은 하나다. 그러기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 노래를
들으면 서러움에 북받쳐서 울지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쟁 직후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개의 예술단체가 왕성한
활동을 하게된다. 연극이며 악극단이며 써커스 국악단체 등 수 많은 예술단체들이 전쟁에서 받은 상처를 잊고자함에서 아니 우리들의 아픔을 달래고저
함에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극의 소재는 전쟁을 배경으로한 작품으로 연출하여 무대에 오르게 된다.
물론 우리 국군과 북한
인민군과 싸우는 것을 비롯한 전쟁의 골자와 또 남한에서 거주하며 숨어서 활동하던 공산당원들이 인민군이 서울를 침입하자 우후죽순과 같이 여기저기서
지방마다 공산당원들이 팔뚝에 붉은 완장을 두르고 천하에 제세상을 만난 듯이 활개를 치면서 선량한 주민들을 선별하여 인근 산이나 아니면 들판에서
구둥이를 파라고하여 그곳에다 뾰족한 대나무 창으로 찔러죽이는 인간으로서는 차마 볼 수 없는 만행들이 여기저기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러한 내용들을 소재로 하여 영화 또는 연극을 만이들 공연하는 등 활약성이 컸다. 연극무대에서는 단장의 미아리고개 이 노래가 약방에
감초같이 빠지질 않았다.
연극무대에서 여자배우가 이 노래를 구슬프게 부를적엔 관중들은
조용하니 숙연한 분이기에 노래를 듣다가 슬픈 음악이 흐르면서 노래대사가 이 노래를 불렀던 여자 배우가 떨리는 슬픈 목소리로 십년이가도 백년이가도
살아만 돌아오세요 네 여보 여보 하면서 끝부분에 여보소리를 크게 끌어올리면서 여보 소리를 지르며 흐느낄 적에 숙연했던 관중석은 참았던 슬픈
감정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터져 관람객도 배우도 다같이 울어서 극장안은 온통 눈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이 노래가 이렇게 큰 위력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6.25사변이란 동족상쟁으로 지금까지 생사를 모르고 행여나
살아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한사람 한사람씩 그리움과 슬픔을 가슴에 않은채 한 많은 이세상을 떠나고
있음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껏 생존해있는 전쟁 미망인들도 긴 세월을 자식들을 위해 생사도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고 그리면서 자식들을 위하여 꽃다운 청춘을 한맺친 슬픔 속에 억울하게 살아왔다. 그 누가 이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단말인가. 필자는
이글을 쓰면서 또한번 가슴이 답답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단장의미아리고개는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애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역사적으로도 보존할 가치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당시에 미아리고개는 야산이고, 공동묘지였으며 인민군과
서울을 뺏기지 않으려고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우리 아군이 많이 전사를 했으며, 또 남쪽으로 피난길에 고개를 넘다가 폭탄을 맞고 희생된 사람도
많았던 고개다. 그래서 한 많은 미아리 고개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숫한 아픔을 준 이 고개는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으며 옛
모습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졌다.
-----------------------------------
반야월 별세…다시는 들을 수 없는‘단장의 미아리고개’
2012.03.26
반야월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60-70대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한 목소리로 통곡하고 있다.
아버지들이 늘상 불렀던 주옥같은 노래들의 주인공이었던 가요계의 원로인 반야월씨의 별세 소식에 아버지들은 마치 스타를 잃은 듯한 기분을 토로하며 한 시대의 별이 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당대의 톱스타들은 반야월씨의 노래를 듣고 보고 자랐다.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을 작곡한 가요계 원로 반야월씨(본명 박창오)가 노환으로 26일 오후 3시20분께 별세했다. 향년 95세.
반야월씨는 지난 1917년 8월1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농산학교를 다니다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반씨는 1939년 태평레코드사에서 주관한 콩쿠르에 입상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반씨는 '진방남'이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잘있거라 항구야', '불효자는 웁니다' 등 많은 히트곡을 불렀다.
반씨는 '반야월'이라는 예명을 사용해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1950년 발표한 '울고 넘는 박달재', 1956년 발표한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이 작곡한 대표적인 곡이다.
반씨는 19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이사, 196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91년 대중음악과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전쟁을 칭송하는 '결전 태평양 일억총진군'이라는 노래를 불러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반씨는 지난 2010년 친일 군국가요를 부른 것에 대해 '매우 후회스럽고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반씨의 빈소는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차려졌다.
'뭐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천 백장미 - 김하정 (0) | 2019.12.27 |
---|---|
꿈으로 끝나 버린 꿈 - 강소희 (0) | 2019.12.27 |
김용임/민요 메들리 (0) | 2019.12.25 |
어디쯤 가고 있을까/김연자 (0) | 2019.12.25 |
서울이여 안녕 - 이미자 (0) | 2019.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