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꼬

겨울이야기 / 이장희

히라소리 2019. 10. 12. 15:48

 

 

 


 

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였습니다.
나는 언제든 경아가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제가 경아의 화난 표정을 본 적이 있을까요.
경아는 언제든 저를 보면 유충처럼 하얗게 웃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경아의 웃음을 보며
얼핏 그 애가 치약거품을 물고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부드럽고 상냥한 아이스크림을 핥는
풍요한 그 애의 눈빛을 보고 싶다는 나의 자그마한 소망은
이상하게도 추위를 잘 타는 그 애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가 만난것은 이른 겨울이었고
우리가 헤어진것은 늦은 겨울이었으니
우리는 발가벗은 두 나목처럼
온통 겨울에 열린 쓸쓸한 파시장을 종일토록 헤매인
두 마리의 길잃은 오리새끼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거리는 얼어붙어 쌩쌩이며
찬 회색의 겨울바람을 겨우내내 불어재꼈으나
나는 여늬때의 겨울처럼 발이 시려워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경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언제든 추워하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라는 것은 기차를 타고가서
저 이름모를 역에 내렸을 때나 맞을 수 있는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빙하가 깔린 시베리아의 역사에서 만난
길잃은 한 쌍의 피난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열아홉살의 뜨거운 체온 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그 겨울을 춥지않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체온엔 경아의 체온이, 경아의 체온엔 나의 체온이 합쳐져서
그 주위만큼의 추위를 녹였기 때문입니다.

경아는 내게 너무 황홀한 여인이었습니다.
경아는 그 긴 겨울의 골목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외투도 없이 내 곁을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자 우리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헤어졌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겨울이야기 /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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