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꼬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히라소리 2019. 10. 7. 18:13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노래를 찾아 헤매던 길고 오랜 여정은 현재로 남은
역사로 다시 우리 앞에 설 것이고, 노래는 그렇게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 신현준 (음악 평론가)

 

시대와 민중이 낳아주고 성장시켜준 소중한 빚을 갚을 길 없고,
노래는 지금도 우리들 모두를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 다시 기록한다.
- 강민석 (전 노찾사 멤버, 현 BBS-FM '세계음악여행' 진행자)

 

 

 

대중음악 100대 명반 53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

 

진보 노래운동, 대중음악으로 진입하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는 진보적 노래운동의 성과가 상업적 대중가요 음반 시장 안에 의도적으로 진입해 성공한,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상 최초의 기념비적 음반이다. 이 음반이 나오기 5년 전 발매된 노찾사 1집에서 그 시작이 이뤄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는 몇 가지 점에서 미흡하다. 우선 진보적 노래운동과 민중가요의 대중가요 시장 진입이 그리 의도적,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84년 노찾사 1집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노래집단이 없는 상태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고 있던 최초의 노래운동 집단 노래모임 ‘새벽'의 멤버들이 김민기와 함께 우연히 만들어낸 프로젝트 음반이며, 무사히 발매되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민중가요의 최고 레퍼토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엄혹한 검열에 통과할 만큼 무난한 노래들이 선택됐다.

 

그에 비해 노찾사 2집은 87년 6월 항쟁으로 부분적인 민주화의 분위기가 생겨난 후, 노래운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란 노래집단을 발족시키고 여러 차례의 공연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축적한 후에 만들어낸 본격적인 첫 음반이라는 점에서 노찾사 1집과 구별된다.

 

노찾사의 활동과 2집 음반의 발매로 드디어 이전의 비의도적인 사건들이 모두 필연적인 ‘확신범'의 소행으로 바뀌었다. 1집의 음반 이름이 팀 이름으로 바뀐 것은 물론 그간 노래운동이 시민공간에서 해왔던 간헐적 활동들은 모두 노찾사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운 소쩍새'로 정리됐다.

 

창립 이후 노찾사는 공연 때마다 매진행진을 계속했다. 대중가요와 다른 경향의 민중가요가 얼마나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는지 증명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발매 이전에 이미 준비된 ‘대박상품'이기도 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것이었다. 1년 사이 50만장을 돌파했고 이후 90년대 초중반까지 80만장 이상 판매됐다.

 

이 음반의 수록곡은 9곡 모두 노래모임 ‘새벽' 멤버들(문승현, 문대현, 안치환, 류형수)이 지은 작품으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던 유명 민중가요였다. 음반은 노래 발표의 시작이 아니라 화려한 유통의 기록이었다. 수록곡들은 당시의 검열 기준에 비춰보면 과감한 표현들로 뒤덮여 있다. ‘민주의 넋'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등의 구절은 다른 대중가요였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표현들이다. 이미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던 이 작품들을 지켜보는 대중들의 눈이 무서워, 엄혹한 검열당국도 손을 대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편곡을 비롯해 음악 전체를 관할한, 따로또같이 출신의 나동민은 키보드를 중심으로 한 매끈하고 윤기 있는 질감을 만들어내 노래모임 새벽의 비합법음반에서와는 다른 노찾사만의 대중적인 색깔을 만들었다. 노찾사 가수들은 개인의 색깔 대신 노찾사라는 집단의 색깔만을 보여줬다. 그래도 ‘광야에서'와 ‘잠들지 않은 남도'를 부른 안치환과 ‘저 평등의 땅에' ‘사계' 솔로 부분의 권진원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은, 90년대 언더그라운드 스타들의 전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들을 거리이기도 하다.

 

〈 이영미 | 대중예술연구자 〉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01.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02. 광야에서
03. 사계
04. 마른 잎 다시 살아나
05. 그 날이 오면
06. 저 평등의 땅에
07. 이 산하에
08. 오월의 노래
09. 잠들지 않는 남도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격동의 순간이 있듯이 우리 나라에도 현대사의 발전 과정에서 독재에 항거한 열망의 시대가 있었다. 이 역사의 현장을 살아온 사람들은 이제 기성 세대가 되어 젊은이들의 음악에 하품을 보내고 있지만 이들이 견뎌 냈던 시간을 정면에서 위로해 주며 1980년대 대중 음악의 한 축을 형성했던 이들의 음악은 1990년대에 들어 신세대에게 전혀 통용되지 않는 음악이 되어 버렸다.

 

운동권의 노래 모임 새벽에 의해 순수 노래 전문패로 시작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1984년 민중가요의 첫 번째 신호탄을 합법 공간으로 쏘아 올린다. 대중적인 인기를 위한 포석 이라기 보다는 민중가요라는 타이틀을 걸고 음반을 내는 것이 중요했던 이들의 첫 앨범에는 서울대의 메아리의 창작곡인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바람 씽씽’ 등과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김소월의 시에 노랫말을 붙인 ‘기도’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후기의 앨범에서 보여주는 운동적 시각에 입각한 가사보다는 일상의 소소함을 표현한 곡들이 많았다. 팀으로서의 활동이 없었던 노찾사는 6.29선언으로 희망을 얻고 합법적인 공개공연을 위해 조직적인 팀이 짜여진다. 그리하여 투쟁가 위주의 곡들을 배제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을 만한 곡들을 선별하고 편곡하여 2번째 앨범에 실었다. 2번째 앨범은 이들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수록곡으로는 후에 대중 가수로 큰 성공을 거두는 안치환이 만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전태일의 삶을 조망한 ‘그날이 오면’, 공장의 풍경을 경쾌한 리듬에 실어 표현한 ‘사계’, 등이 인기를 얻었으며 판매고는 50만장을 넘겼고 지하에서만 부르던 음악들이 인기 차트의 순위에도 등장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이들의 성공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모든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멜로디, 감상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노랫말에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넘어들면서 이들의 음악은 수용자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과거 여러 노래패에서 좋았던 곡들을 발췌하고 수집했던 이들은 3집에서는 ‘그리운 이름’, 이나 ‘사랑 노래’와 같은 창작곡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조금은 투쟁적인 어투의 곡 ‘선언’을 슬며시 집어넣었다. 이 앨범에서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었던 ‘님을 위한 행진곡’이 대중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점점 시대의 조류에 조금씩 밀렸다.

 

이 당시 급변한 정세와 문민정부의 출범 등으로 진보 진영은 혼돈을 맞았다. 이에 따라 노찾사의 네 번째 앨범은 직설적인 문제의식의 투영보다는 새롭게 대두된 90년대의 고민과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이들뿐만 아니라 꽃다지와 노래마을 등이 합법 공간으로 투항하였다. 이들은 노래를 통한 인간 정서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자 하는 모색을 새롭게 하며 점점 달라지는 문화현상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빨리 대처할 수도 없었고 성공적이지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4집은 기존의 민중가요의 성격을 지닌 노래들 외에도 록과 아카펠라 등의 형식적인 실험을 더했다. 하지만 댄스씬으로 몰린 세대들에게 외면당했고 내부적으로는 음악성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현재 노찾사는 활동 중단 상태에 놓여 있다. 1992년의 와 같은 끊임없는 성원으로 뒤덮었던 열화와 같은 팬들의 호응은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다. 대학생들 중에는 노찾사에 들어오려는 학생이 없고 거기에 따른 재생산의 토대, 음악생활, 연습생활을 보장해 줄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합창, 중창의 시대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고 그룹 중심의 춤이 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는 과거 엘리트주의에 의해 멸시받던 힙합이 담지하게 되었다. 아마도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노찾사에게는 지금 시대에 부응하는 것은 무리이리라. 어느 순간부터 자본주의 논리는 진보진영의 해체와 약화를 속도감 있게 진행시켰다. 노찾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급격히 식어 갔으며 신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담론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가볍고 감각적인 문화 상품은 현실의 진중하고 어두운 모습들을 모두 감추어 버렸다. 정작 노찾사의 시대에 싸워왔던 문제들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는데 우리 모두는 과거를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제의 악인은 살아남아 떵떵거리고 의인은 여전히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지상의 고난을 묻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