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화 (마종기) : (차이코프스키 : 녹턴,op.19 제4번) 2. 치자꽃 설화 (박규리) : (마이클 호페:엘레지) 3.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 (비발디 : 사계 중 겨울 1악장) 4. 석남사 단풍 (최갑수) ; (존 필드 : 녹턴 제 10번 e단조) 5.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조병화) : (마이클 호페 : Lover's Lament) 6. 면회 사절 (정채봉) : (쇼팽 : 녹턴) 7. 엽서 엽서 (김경미) : (필 콜터 : 마리노 월츠) 8. 겨울 나무 (장석주) : (드보르작 : 피아노 트리오 '둠키' 1악장) 9. 넥타이 (나해철) : (마이클 호페 : Beloved) 10.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 (포레 : 꿈꾸고 난 후) 11. 가을 저녁 (이동순) : (포레 : 파반느op.50) 12. 가을 (강은교) : (사티 : 짐노페디 1번) 13.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 (사티 : 그노시엔느 제 3번) 14. 선운사 (전연옥) : (맨델스존 : 무언가 op. 109) 15. 내가 만든 꽃다발 (삐에르 드 롱사드) : (비발디 : 류트 협주곡 RV93, 라르고) 16. 미안하다 (정호승) : (쉰들러의 리스트 테마 음악) 17. 사랑 (김용택) : (알비노니 : 아다지오) 영혼을 문지르는 나비
몇년 전 빠리, 친한 후배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식탁 앞에서 그 집의 초등학교 2학년짜리 딸아이가 뭔가 송알송알 외우고 있었다.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재, 뭐하는 거지?" "내일 시 암송 시험이 있대요. 여기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2주에 시 한 편을 외우게 해요. 그것도 운을 맞춰서 잘 읽어야 좋은 점수를 받아요." 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수저를 놓고 따져 보았다. 2주에 한 편, 한달에 두번, 1년이면 방학을 빼고라도 약 20편, 초등학교 5년, 중학교... 그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면 얼마나 많은 시를 줄줄이 외울 수 있을까? 갑자기 프랑스 사람들은 죄다 마음의 여유가 있고 삶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병아리 같은 초등학생들 입에서 시가 꽃송이처럼 나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나는 무릅꿇고 앉아 사랑하고 싶었다.
나는 80년 초부터 MBC-FM의 <FM 가정음악실>을 시작하면서 시를 한 편씩 읽어 왔다. 무슨 거창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시도 음악처럼 외롭거나 지친 마음을, 혹은 삶의 번잡함을 잠시 잊게 하는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시를 읽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인 부분은 '오늘은 어떤 시를 고를까'와 '배경음악을 무엇으로 하나'였다. 시를 고르는 일과 그 시에 잘 어울리는 음악을 찾는 일은 늘 쉽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처럼 기쁨이 있는 고통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방송국이 바뀌고 프로그램이 바뀌어도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늘 시 한편씩을 읇어 댔다. MBC-FM<FM 가정음악실>부터 KBS-FM <김세원의 가정음악>, <노래의 날개 위에>, <저녁의 클래식> 그리고 지금의 <당신의 밤과 음악까지>까지 줄잡아 20년을 했다고 치면 7300여편을 읽어댄 셈이다. 이렇게 꾸준히 시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청취자들의 끊임없는 호응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동네 책방에 나갔더니 "시를 잘 읽어 주셔서 시집이 잘 팔려요"라는 말을 건네던 주인 아저씨라든가, "우린 상가에서 옷장사를 해요. 문을 열고 나면 바로 김세원씨 프로에 다이얼을 고정시켜요. 그리고 시가 나오면 청소하던 것도 멈추고 급히 커피를 타고 시 낭송을 듣습니다. 어떤 날은 옆가게, 그 옆가게 언니들과 같이 한 자리에서 듣기도 합니다."라는 편지 등 이러한 것들이 나를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이다. 위대한 목적없이 시작한 시낭송이 20여년 계속되는 동안, 돈버는 일에만 신경을 써야 하는 상인들의 삭막한 가슴에, 무거운 짐을 등에 업고 있는 외롭고 힘든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힘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나비가 되어 그들의 영혼을 부드럽게 문지르고 있었다. 길이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나 아무도 없는 막막한 빈 들판에서 혹은 옆에 없는 그리운 사람이 많이 보고 싶을 때, 나의 이 시낭송이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싶어서 난생 처음으로 시낭송 음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를 가까이 해서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200년 겨울 김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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