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iam Makeba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생인 미리암 마케바는 '마마 아프리카' 혹은 '아프리카 노래의 여왕'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가수이다. 아프리카 태생인 만큼 그녀의 노래는 아프리카 리듬에 기반한 민속음악과 대중적 음악을. 결합하고 참여적인 운동가요를 생산함으로써 예술을
통한 사회운동 차원의 의미까지 획득하고 있다.
그녀가 1932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나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것은 1954년 맨하탄
브러더즈(Manhattan Brothers)의 보컬로서였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이내 아프리카와 미국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 1959년 J. F.
케네디 생일축하 파티에서의 공연으로 확고한 위치를 공식화하게 되며 곧 당대의 대가수 해리 벨라폰테와 같이 작업을 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의
'The Click Song', 'Pata Pata'등의 노래는 고전적 명곡이라 하겠다. 1963년 그녀는 유엔에서 조국의 아파테이트 정책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하였는데, 이로써 남아공 정부로부터 입국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1980년대
말 다시 이 조치가 풀리기까지 약 30년을 마케바는 세계를 순회공연하며 조국의 실상을 알리는데 힘썼던 음악인이자 인도주의자로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Harry Belafonte
배우이자 인도주의자로서 '칼립소의 제왕'으로 알려진 해리 벨라폰테는 1927년 뉴욕의 할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어린 시절 이곳에서 성장하기도 했다. 대중스타로 성공한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n -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미국
흑인들을 가리키는 말) 중의 한명으로 기록된다. 그의 음악쟝르는 민속음악과 재즈, 칼립소 등이다. 캬바레 등지에서 노래를 시작한 그는 미국의
민요와 서인도제도의 음악을 결합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50년 들어 'Jamaica Farewell', 'Banana Boat' 등의
불후의 명곡으로 빌보드 챠트를 석권하면서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이후 60년대 들어서도 미리암 마케바와 같이 공연을 펼치며 많은 노래들을 같이 불렀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에도 다수
출연하며 인기를 더했는데 미국에서 최초로 흑인 텔레비전 피디로 활약하며 에미상을 수상하는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60년대 비틀즈를 위시한
영국의 팝스타들이 등장, 대중들의 인기를 몰아가면서 그의 음악은 다소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도 하였으나 그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음반작업을
하고 오히려 시민운동가로서, 특히 아프리카를 위한 사회적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1986년 'We Are The
World'에 참여했고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그는 주로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하는 역할로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