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강강술래 뿌리깊은나무조선소리선집 14
1. 전반부 / 중중머리 - 진양조 - 중중머리 - 점점 빠르게 21'12 2. 후반부 / 진양주 - 중중머리 - 점점 빠르게 - 자진머리로 20'52
해남 강강술래 - 그 본바닥 소리
<강강술래>는 전라남도 남해안 지역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여자들의 노래와 춤이다. 주로 한가윗날 밤에 동네 아낙들과 처녀들이 많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을 이루어 둥글게 옆으로 도는 것을 기본 동작으로 하여 다양한 동작이 엮인 춤을 추며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모인 이 중에서 앞소리꾼이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뒷소리꾼들이그 독창을 받아 제창을 하기를 반복하는 식으로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노래와 춤에는 남생이 놀이, 고사리꺾기, 청어 엮기, 기와 밟기 같은 이름이 붙은 여러 놀이도 포함되어 있다. 더러는 그 기원을 임진왜란 때에 아군을 돕던 부녀자들과 연관짓기도 하고 더러는 역사에서 저절로 형성된 민속이라고 관찰 하기도 한다. 그 유래야 어찌되었거나, 그 뛰어난 음악성으로 이제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강강술래>는 육이오 난리 전까지만 해도 전라남도 남해안의 물과 섬에서 여자들이 두루 했다. 그러나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의 등쌀로, 서울의 무대에서 상업화되어 펼쳐지는 것말고는 도처에서 없어져 지다시피 하고 전라남도 진도와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조선 시대에 해남에 두었던 수군 군영을 전라 우수영이라 불렀었다. 오늘의 해남군 문내면에 드는 열두리를 통칭하여 아직도 그곳 사람들은 ’우수영‘이라 부른다.)에만 살아 남아 있다. 이 음반에 담은 <강강술래>의 노래는 '우수영' 것이다. 우수영의 한 여염집 마당에서 <강강술래>를 하는 재주로 무형문화재 제8호 예능 보유자로서 지정된 김길임 씨(선둘네), 그 이수자 이인자 씨(남화각시), 예능 보유자 후보 박양예 씨(끝심이)가 차레로 앞소리를 하고 그이들의 이웃 부인들이 뒷소리를 했다. <강강술래>가 아직 살아 있는 현장에서, 그 곳 아낙 스물한명이 실제로 하는 <강강술래>의 노래를 부른대로 음반에 떠다 옮긴 것이다.
<강강술래>는 단순한 민요라기보다는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축제에 차용된 의식음악의 형식을 띠고 있는 듯 하다. 앞에 말했듯이 여러 이름의 민속놀이도 <강강술래>라는 큰 테두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독창(메기는 소리, 앞소리)에는 마을 사람들의 축원이 대변되어 있는 듯하고, 제창(받는 소리, 뒷소리)으로 반복되는 '가앙가앙수울래에'의 가락에는 마을의 안녕을 바라는 공동체 의식이 서려 있는 듯하다. <해남 강강술래>와 <진도 강강술래>는 사설이나 음악의 짜임새가 서로 거의 비슷하다. 다만 <진도 강강술래>가 해남 것보다 기교에서 다양하고 세련된 음악 구조로 짜여 졌다면, <해남 강강술래>는 더욱 더 토속성 있고 순박한 흥취를 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또 <해남 강강술래>에는 <진도 강강술래>에는 없는 '가마타기(가마등)' 부분이 있는데, 이 대목의 음질서는 본청(라), 떠는 청(미), 꺽는 청(도, 시)으로' 이루어진 남도 계면음계(게면길)와는 다른 음계로 되어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음반은 현장 음악-게다가 전통음악-을 무대나 상업 녹음실의 극화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 드문 업적을 반영한다. 대도시에서 공연되어 온 강강술래는 음악이 윤색되고 춤으로 보아서도 도식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강술래 형태의 음악과 춤이 이 나라에 참으로 드문 예술이어서 여러 거국적인 행사에서 민족예술단의 단골 본보기로 제시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우리들이 그 도서관, 무대판을 원형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섭섭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해남 강강술래>의 음반으로 그 본바닥 노래가 세상에 더 널리 친밀해질 수 있다면 그 문화적인 의의야말로 매우 클것이다. 바람과 개도 참여한 현장 녹음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음반은 거개가 마이크를 여러 개 사용해서 녹음한 것들이다. 또렷하긴 하지만 분위기나 현장감이 거의 없는 소리를 낸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현장감이 좋도록 음악을 녹음할 때에는 흔히 '원 포인트 방식'이 채용된다. 마이크를 한 곳에 고작 한개나 몇 개만을 설치하여 멀리서 나는 소리와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가 구별되게 하여 현장의 느낌과 분위기가 전달되게 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음반은 우리 나라에서 나온 것으로는 아주 드물게 그리고 아직까지는 아마 유일하게 '원 포인트 방식'으로 녹음해 박은 것이다. 해남의 김길임 씨와 이인자 씨의 <강강술래>를 이미 스튜디오 녹음으로 기록해 지니고 있던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에서 그것을 제쳐두고 이 두 부인이 해남 우수영 마을의 현장에서 동네 부녀자들과 함께 부르는 <강강술래>를 본바닥 소리로 기록하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그 드문 방식이 채택되 것이다. 이 녹음은 대금을 전공한 이이지만 우리나라의 녹음 관행이 눈에 덜 차 더 나은 녹음을 스스로 해보겠다고 나서서 '에루화 민속기획'스튜디오를 차린 정의용 씨가 맡아 했다. 그이는 해남 우수영의 김춘길 씨 집 압마당에서 김길임 씨, 이인자 씨, 박양애 씨를 위시한 마을 부녀자 스물한명이 춤추며 부르는 <강강술래>를, 녹음기는 자전거 짐판 위에, 마이크는 사진기용 삼각대 위에 올려 놓고 팔십구년 시월 십칠일 오전에 녹음했다. 김길임씨는 그 마이크의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춤추는 동네 부인들을 바라 보며 앞소리를 했고, 그 부인들은 평소에 그 동네에서 <강강술래>를 하던 대로 마당에서 손에 손을 잡고 돌며 춤추고 노래했다. 그랬는가 하면 후반부에서는 부인들과 함께 마당을 돌던 이인자씨와 함께 박양애씨가 앞소리를 해서 '움직이는 앞소리'를 녹음할 수 있게 했다. 비바람을 몰고 온 태풍 끝이어서 하늘은 걷히었지만 바람은 완전히 자지않아 바람 소리가 녹음에 섞이지나 않을까, 시골의 동네마당이어서 개짖는 소리, 닭우는 소리, 경운기나 짐차의 소리가 끼어 들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으나, 그것들이 음악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면 오히려 현장감을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터이라고 합의가 되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그 훼방꾼들이 나타나고야 말았다. 이를테면 이웃의 개짖는 소리까지야 좋았으나, 담 너머에 사는 이가 개를 짖는다고 두둘겨 패 크게 깽깽거리는 소리는 않되겠고, 골목 밖에서 파수보는 사람까지 두었지만, 경운기는 말릴 수 있었어도 '쉬'하는 당부에 '내가 무슨 말을 해. 암말도 안해.'하는 노인은 말릴 수 없었다. 그래서 여러번 낭패를 하고 거듭해서 녹음한 것이 이 음반의 노래다. 자세히 들어 보면 개짖는 소리도 나오고, 허리 굽히는 부인의 주머니에서 지갑 벌어지는 소리까지 들리는가 하면. 특히 후반부에는 소리 소리 사이에 세찬 바람부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그런가 하면 앞소리하는 김길임씨가 노래를 하다가 잠깐 멈칫하는 대목도 나오지만, 그것 또한 정직하게 담아 두기로 했다. 이 음반에 실린 <해남 강강술래>는 여태까지 우수영에 전해진 <강강술래>의 모든 부분을 김길임씨가 기억하는 대로 빠짐없이 불러 수록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악을 전공하는 분들 중에서도 과거에 못들어 보던 대목들도 나온다. 이 <강강술래>의 녹음은 본디 엘피 음반을 만들려고 한 것이어서 죄다 수록하자니 음반 앞뒷면을 다 채워야 길이가 되고, 또 그러자니 본디 처음부터 끝까지 쉬임없이 불러야 할 노래를 가운데에서 쉬었다가 부르게 했다. 앞면이 갑자기 뚝 끊기고 뒷면이 갑자기 시작되는 어색한 음반이 되지 않게 하려고 그랬다. 그랬더니 쉬었다가 부르는 김길임씨의 음정이 장 이도가 낮게 잡혀서 나왔다. 현장 녹음의 다른 돋보이는 점들이 이 흠을 상쇄해 주기를 바라며 그대로 수록하기로 결정했다. 이 음반은 전통 음악 애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오디오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도 흥미거리가 되는 귀한 음반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만이 아니라 바람과 개와 한 부인의 주머니 속 지갑까지도 참여한 드문 음반이다. 백대웅 / 작곡가, 중앙대 국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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