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꼬

나무의자 - 백창우

히라소리 2020. 3. 21. 13:19

 

 

 

 

 

 

 

 

나무의자

 

어느날 이 황량한 도시를 떠나

멀리 있는 친구에게서

낯익은 표정을 담은 한장의 엽서를 받을 때

우리들은 쓸쓸한 기쁨을 부어

몇 잔 소주에 취하고 싶구나

 

잊혀진 이름들은 없는지

잊혀진 얼굴들은 없는지

하늘의 높이를 알기도 전에

날개를 접어버린 우리들

 

사랑를 하고 싶은데 지친 몸을 기대고 싶은데

삐걱이는 나무의자 하나도 없어

가슴이 추운 우리들

바람 높은 거리에 서서

짤랑짤랑 주머니의 동전을 세며

포장마차의 작은 공간이 그리운 우리들

 

어느 날 스산한 저녁무렵

거대한 도시의 한 켠에서

세상에 잔뜩 겁먹은 늙은 거지를 만날 때

우리들은 건조한 슬픔을 부어

몇 잔 소주에 취하고 싶구나

 

버려진 이름들은 없는지

버려진 얼굴들은 없는지

살아 있음에 참 뜻을 알기도 전에

마음을 닫아버린 우리들

 

나의 손을 잡고 싶은데

나의 노래를 나누고 싶은데

삐걱이는 나무의자 하나도 없어

가슴이 추운 우리들

 

어둠 깊은 가리에 서서

짤랑 짤랑 주머니의 동전을 세며

포장마차의 작은 공간이

그리운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