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꼬

밀양 머슴 아리랑 - 송창식

히라소리 2020. 3. 10. 05:54

밀양머슴아리랑 (1987) 작사: 박승인, 작곡: 송창식, 노래: 송창식



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봐요, 봐요
날 좀 봐주세요

동지 섣달 꽃 보듯이  날 좀 봐요, 봐요, 봐요

날 좀 봐 주세요


 정든 님을 만났는데 삐죽빼죽, 삐죽빼죽
말 한마디 못해

바보처럼 미소지며 히죽해죽, 히죽해죽

시간만 자꾸 가네


 아리랑 아리랑 쓰리랑 쓰리랑, 아리랑 쓰리랑랑랑

아리쓰리 아라리요요요
사랑하는 그대여 말 좀 해요, 해요, 해요

 말 좀 해주세요


이른 아침 제비처럼 말 좀 해요 해요 해요

말 좀 해주세요



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봐요, 봐요,

날 좀 봐 주세요

대보름날 달 보듯이 날 좀 봐요, 봐요, 봐요,

날 좀 봐 주세요


 정든 님을 만났는데 삐죽빼죽, 삐죽빼죽,

악수 한 번 못해

바보처럼 미소지며 히죽해죽, 히죽해죽

얼 좀 빠지겠네


 아리랑 아리랑 쓰리랑 쓰리랑, 아리랑 쓰리랑랑랑

아리쓰리 아라리요요요 


 사랑하는 그대여 내 손 잡아요, 잡아요, 잡아요
날 좀 잡아줘요

헹군 후에 빨래짜듯 내 손 잡아요, 잡아요, 잡아요
꼭 좀 잡아줘요, 꼭 좀 잡아줘요

날 좀 잡아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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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宋昌植, 1947~ )은 인천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경찰관인 아버지가 한국 전쟁에 나가 숨지고 어머니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누이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생활했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나오는 소리란 소리는 다 듣고 따라불렀다.

그래서 초등학교 음악교과서는 입학도 하기 전에 6학년 책까지 모두 뗄 정도였다. 음악 책을 보고 거기에 실린 아는 노래를 죄다 불렀는데, 4학년 책부터는 콩나물 대가리 밑에 계명이 쓰여 있어 도미솔솔 하며 부르다 보니까 음계를 저절로 알게 됐다”는 게 그의 회고다.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 이미 악보를 읽고 채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인천중을 졸업하고 서울예고에 입학했다. 지휘자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 작곡과를 가고 싶었지만 작곡은 별도로 레슨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해 성악과를 선택했다. 여기서 음악이 공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 서울예고는 학생이 각자 개인레슨을 받고 그 레슨교사의 추천을 받아 학기말 실기시험을 보는 제도를 시행했다. 보통 가정에서 하는 레슨비가 1만원일 때 학교 레슨교사의 교습비는 1000원.



그러나 인천에서 서울까지 다닐 통학비가 없어 학교 창고에서 잠을 청하던 그로서는 이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고, 실기시험은 계속 0점이었다. 3학년이 되자 학교는 유급문제로 상의할 게 있다며 가정통지문을 보냈고, 이를 본 송창식은 그 길로 말없이 학교를 그만두었다. 고교를 중퇴한 셈이나, 나중에 보니 서울예고 동창회 명단에 한 해 선배들과 같이 졸업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조기졸업 처리가 된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학교를 그만둔 송창식은 떠돌이 생활을 한다. 닥치는 대로 살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책을 훔쳐 헌책방에서 음악책이랑 바꿔보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은 놓지 않았다. 어떤 계기로 40일간 무전여행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가 되겠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새기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의도(인천 영종도 아래 섬)에서 1개월간 생각을 정리하고 서울로 와 공사판 야방(경비)을 서다가 홍익대 잔디밭에서 세시봉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음악인생을 걷게 됐다.






동지 섣달 꽃 보듯이 날 좀 봐요 (1990 remake) - 한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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