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꼬

이장희 --- 겨울 이야기 (영화 "별들의 고향")

히라소리 2020. 1. 1. 19:42


 



 



 



 



 



 


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였습니다 저는, 언제든 경아가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제가, 경아의 화난 표정을 본 적이 있을까요? 경아는, 언제든 저를 보면 유충처럼 하얗게 웃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경아의 웃음을 보며 얼핏 그 애가, 치약거품을 물고 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부드럽고 상냥한 아이스크림을 핥는 풍요한 그 애의 눈빛을 보고 싶다는 저의 자그마한 소망은 이상하게도 추위를 잘 타는 그 애를 볼 때마다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이른 겨울이었고 우리가 헤어진 것은, 늦은 겨울이었으니 우리는, 발가벗은 두 나목처럼 온통 겨울에 열린 쓸쓸한 파시장을 종일토록 헤매인 두 마리의 길 잃은 오리새끼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거리는 얼어붙어 쌩쌩이며 찬 회색의 겨울바람을 겨우내내 불어제꼈으나 나는 여늬 때의 겨울처럼 발이 시려워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 것은, 경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봄이건 · 여름이건 · 가을이건 · 겨울이건 언제든 추워하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라는 것은 기차를 타고 가서 저 이름 모를 역에 내렸을 때나 맞을 수 있는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빙하가 깔린 시베리아의 역사에서 만난 길 잃은 한 쌍의 피난민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열아홉 살의 뜨거운 체온 뿐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 외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그 겨울을 춥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체온엔 경아의 체온이, 경아의 체온엔 나의 체온이 합쳐져서 그 주위 만큼의 추위를 녹였기 때문입니다. 경아는, 내게 너무 황홀한 여인이었습니다 경아는, 그 긴 겨울의 골목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외투도 없이 내 곁을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자, 우리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헤어졌습니다 그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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