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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1집 - 들국화 (1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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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1집│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 1980년 5월 광주학살로 정권을 공고히 한 전두환정권은 1982년부터 문화적인 유화책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게 컬러TV방송, 프로야구출범, 두발?교복자율화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 진행된 정치적인 유화책은 1985년 2월 총선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 신한민주당이 일대 돌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 광주’ 이후 숨죽이며 살던 사람들은 2월 총선 과정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공통된 염원을 확인했고, 자신들의 힘으로 여소야대를 이뤄낸 자그마한 성공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바람이 단지 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산울림의 데뷔 앨범(1977)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의 지평을 새롭게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그런 시대적인 상황 하에서 발매되었고, 그래서 수록곡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심상치 않게 여겨졌다. 앨범(‘작품’으로서의 음반) 중심으로 한국대중음악사를 살펴보면 60년대 말 신중현의 덩키스 활동 이래 주목할만한 앨범들이 나오다가 1975년 대마초파동으로 인해 신중현을 비롯한 많은 뮤지션들이 활동 규제를 받으면서부터는 작가주의적인 앨범들이 사라졌다. 1977년에 산울림이라는 한국록의 독보적인 밴드가 등장했지만 오히려 그건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이정선, 정태춘, 조동진과 대학가요제 출신의 작은거인, 송골매 등이 간간이 좋은 앨범들을 발표하긴 했지만 1985년 들국화가 본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10년간은 ‘한국대중음악의 암흑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뮤지션들이 멸종된 시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뮤지션들이 그들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던 시기였고,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뮤지션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시기였다. 그래서 들국화가 본 앨범을 발표한 이후로는 마치 ‘어디서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등장한 것’처럼 현재 거장이라고 얘기되는 뮤지션들이 나타났고, 그들이 다양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앨범들을 발표하면서 80년대 중반?후반을 ‘한국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로 만들었다. 엄밀히 말해서 들국화의 데뷔 앨범 전에 이주원이 이끄는 ‘따로 또 같이’의 2집(1984)이 창작, 세션, 녹음 면에서 한국대중음악의 진정한 새 출발이었고, 들국화의 예고편이었지만 음악적인 파급력에서 본다면 들국화를 80년대 새로운 음악의 시작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들국화의 데뷔 앨범에 담긴 노래들의 감성은 현재 음악마니아들의 감성과도 동떨어지지 않는데, 이는 70년대 말 산울림의 노래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처음이라고 할만한다. 이는 60?70년대 비틀즈, 홀리스, 배드 핑거, CCR, 스틱스, 레너드 스키너드 등을 듣고 자란 뮤지션들이 역시 그 음악들을 듣고 자란 음악수용자들에게 들려준 ‘창작’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술한 뮤지션들이 영미권 록음악의 현재적인 기원이고, 대중음악의 동시대성을 생각한다면 들국화는 음악적인 트렌드를 벗어나지 않은 ‘세련된’ 한국대중음악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매일 그대와><오후만 있던 일요일><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와 같이 당대 청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감성의 자작곡들은 대중음악 만들기의 새로움을 제시했고, 그들이 직접한 세션으로 자신들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최구희(기타)와 허성욱(키보드)의 감각적인 연주는 전인권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을 상승시키는 기본 바탕이다. 만약 <그것만이 내 세상><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서 전인권이 절규할 때 옆에서 같이 울어대는 최구희의 기타 솔로가 없었다면,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서 허성욱의 무심한 회색빛 피아노 프레이즈가 없었다면 그 노래들이 지금처럼 기억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염두할 점은 전인권 개인의 디스코그라피로만 볼 때 들국화의 본 앨범은 최고작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인권의 최고작은 단연 [머리에 꽃을(1979~1987 추억 들국화)](1987)이다. 음악사적인 평가와 음악비평은 다를 수 있다.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 (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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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들국화의 등장 그러나 서슬퍼런 유신의 시기에는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한 곡들이 아닌 진정한 Rock의 정신에 충실하고자 한 노래들은 방송을 나가기도 힘들었으며 급기야 금지곡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금지곡이라는 것이 겨우 뿌리를 내리려던 Rock의 토양 자체를 없애 버리는 계기가 되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Rock은 그 뿌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만 있는 것입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5년 중반까지 신중현에 의해 뿌리내려지고 성장해온 한국 Rock의 명맥을 이은 Group이 바로 들국화입니다. 쇄퇴할뻔했던 한국 Rock이 들국화로 인해 다시한번 전성기의 시절이 맞이하게 되는데 들국화의 Live음반과 신중현의 Rock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이끄는 한국 Heavy metal 공식 1호 Group인 시나위의「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발표된 1986년을 시작으로 백두산, H2O등 여러 Underground Band들이 한국 Rock을 꽃피웠고 김현식, 유재하, 시인과 촌장, 신촌 블루스 등 언더 그라운드 뮤직이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면서 우리나라는 다시금 Rock의 토양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들국화의 영향
그들은 지하에서부터 갑자기 나타나 처음부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창작력과 연주력을 보여주면서 직수입된 팝송이나 록 음악에 심취해서 「국산 가요」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청소년들을 단번에 휘어잡아 들국화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컬트라고 하기엔 너무나 광범위하고, 폭발적인 현상이었죠. 들국화가 결성되기 l년 전인 1984년에 발매된 동아기획 옴니버스 음반「우리 노래 전시회」는 최성원이 Produce 하고 전인권이「그것만이 내 세상」을 불 렀으며 , 허성욱이 Piano 주자로 참여했습니다. Rock, Fork, Blues, Fussion 등 1970-80년대 Underground의 다양한 실험은 들국화 l집에 총집결되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감성 의 Rock 음악이 탄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기교를 당시 우리 젊은이들과 청소년의 정서와 절묘하게 결합시켰고 이것을「한국적인 록」의 등장이라고들 평가하였습니다. 들국화의 혁명적 돌파는 음악적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촌 크리스탈 백화점 소극장의 첫 공연을 시발로한 전국 순회 공연과 더블 라이브 앨범의 발매로 결실로 이들의 성공에 고무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소극장 공연의 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들국화의 쇠퇴 들국화가 사라진 1980년 말 H2O, 시나위, 블랙신드롬, 백두산,부활등 많은 그룹들도 하나 둘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2인조 밴드였던 시인과 촌장 역시 함춘호가 빠지고 혼자 남은 하덕규도 가스펠 가수로 귀화하기에 이르렀으며 엄인호를 중심으로 한 신촌블루스도 매 앨범 고정 멤버를 갖지 못한 불안한 상태로 유지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한국 Rock의 토양이 얼마나 허술한지 그리고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들국화의 재결성 해체 이후 전인권님은 솔로음반 2장과 라이브 앨범 등을 발표하였고 최성원님 역시「제주도의 푸른밤」이 들어 있는 1집과「어린왕자」의 2집을 발표, 주찬권님도 넉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왕성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손진태님과 최구희님의 들국화 해산 이후 발표된 음반들도 역시 멋있고 좋았지만, 그건 단지「좋은 음악」뿐이었습니다.「그것만이 내 세상」의 절규도「세계로 가는 기차」의 흥겨움도 맛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리움의 두께만큼 안타까움이 더해갔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3J(지미 핸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의 죽음과 함께 미국의 히피 정신도 사이키델리 락도 하향곡선을 그렸습니다. 들국화의 해체 이후 90년대의 우리의 처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후로도 꽤 많은 락 그룹들이 부침을 거듭했지만, 아직까지 들국화가 이루어 놓은 높이와 깊이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던중 들국화는 지난 1997년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허성욱의 사망을 계기로 1998년 다시 모여 「안녕하세요, 들국화」란 공연을 가지며 들국화를 재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워낙 급하게 모인 터라 서로 음악적 입장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더구나 전인권님이 히로뽕 복용혐의로 다시 구속되어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기간 동안 최성원님, 주찬권님 등이 자주 면회를 오고 그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서로간의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2000년 전인권님이 출소하자 그들은 다시 뭉쳤고 미사리의 <엉클톰>이란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호흡을 맞춘 끝에 지난 9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재기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록음악이 아사 직전의 상태에 와 있는 것을 먼저 음악하는 사람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최근 젊은 음악평론가들이 선정한 가요사의 명반 가운데 압도적인 표차로「왕중왕」의 반열에 오른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청중들은 들국화를「추억」하며 공연장으로 가겠지만, 들국화는 공연장에 모인 청중들에게「추억」이 아닌 새로운 「힘」과「정신」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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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Profile) 홈페이지 (Homepage) : http://www.dkh1985.net/
구성 (Group Members) : 전인권 - 보컬, 기타 / 민재현 - 보컬, 베이스 기타 / 이건태 - 드럼 락 밴드 "들국화" 의 인원 구성 변화 들국화 1기 구성원(1985) 들국화 2기 구성원(1986) 들국화 3기 구성원(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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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의 탄생과 데뷔앨범 들국화는 1982년 8월에 이촌동 ‘까스등’에서 전인권과 허성욱이 함께 공연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전인권은 이주원이 이끄는 ‘따로 또 같이 1집’(79)에 참여한 이후 솔로 독립을 한 상태였고, 비공식 앨범 두 장을 79년과 80년에 각기 발표했다. ‘까스등’ 공연 전에도 전인권은 ‘조·이’라는 듀엣으로 활동하던 조덕환, 특별한 음악경력이 없었던 허성욱과 함께 강릉에 있는 나이트클럽 등에서 노래하곤 했다. 그러다가 이영재, 이승희와 함께 트리오로 앨범(80)을 발표한 최성원을 82년 말에 만났고, 이듬해 4월의 이태원 ‘뮤직라보’ 공연부터는 최성원도 참여하여 3인조 체제가 되었다. 최성원이 팀명 후보로 ‘코스모스’ ‘들장미’ ‘들국화’ 등의 이름을 제시한 것 가운데 ‘들국화’를 선택함써 오늘날의 들국화가 있게 되었다. 현재의 팀명으로 공연을 한 것은 83년 11월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 옆 ‘에스엠’ 공연부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덕환이 참여함으로써 완벽한 라이업이 형성되었고, 85년 9월에 ‘역사적인’ 데뷔 앨범(사진)을 발표했다.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말 그대로 ‘역사적’인데, 왜냐하면 들국화 이전과 이후를 나눠서 얘기해도 좋을 만큼 ‘80년대 새로운 대중음악의 시작’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뮤지션 세대교체, 창작, 세션, 녹음 모든 부분에서 분기점이었던 이 앨범은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조용하게 창작에 몰두하던 신진 뮤지션들 중에서 먼저 치고 올라온 경우였고, 그 결과물은 이후 몇년간 유지된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에서 전범 역할을 했다. 마치 90년대 얼터너티브록을 폭발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던 너바나의 ‘Nevermind’(91) 같은 앨범이 들국화 데뷔 앨범이었다. 이후 들국화는 서울스튜디오에 그들의 팬 수백명을 데려다놓고 만든 ‘라이브 콘서트’(86)와 조덕환이 빠지고 최구희, 손진태, 주찬권이 가입한 ‘들국화 2집’(86)을 발표하고 나서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멤버들은 각기 활동을 했고, 들국화 재건에 몰두했던 전인권이 태백산맥 출신의 민재현, 송골매 출신의 이건태와 함께 ‘들국화 3집’(95)을 발표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2000년에는 윤도현밴드,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 동물원, 언니네이발관, 강산에 등이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 ‘A Tribute To 들국화’가 나왔다.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2007년 08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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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음악 100대 명반 ‘들국화’1위 : 1- 207(45) 들국화 [들국화] (1985/서라벌레코드) 11- 110(28) 어떤날 [어떤날 Ⅱ] (1989/서울음반) 21- 89(24) 동물원 [동물원] (1988/서울음반) 31- 79(21) 시인과 촌장 [숲] (1988/동아기획) 41- 74(20) 유앤미 블루(U&Me Blue) [Nothing's Good Enough]
(1994/Nices) 52- 61(18) 부활 [부활 Ⅱ: Remember] (1987/서울음반) 61- 55(16) 김수철 [김수철 1집] (1983/신세계음향) 71- 50(17) 패닉(Panic) [Panic] (1995/신촌뮤직) 81- 44(16) 가리온(Garion) [Garion] (2004/Ales Music) 91- 39(13) 양희은 [1991] (1991/킹레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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